주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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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시

  주천시는 감숙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고 감숙성(甘肃省)의 "숙(肃)"자를 의미하는 도시이다. 한나라 시기 하서사군 중의 하나였고 예로부터 중원에서 서역으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였으며 실크로드 상의 중요한 오아시스 도시였다. 주천시의 면적은 19.2만 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는 약 110만 명으로 행정상에서 1구(区), 2시(市), 4현(县)을 관할한다.

  주천시의 지세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며 서남방향으로부터 동북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남쪽의 기련산지는 높이가 3000-5000미터인 고산군인데 산세가 웅대하고 산봉우리가 높고 가파롭다. 주천시의 서부에 위치한 소륵하 유역은 내륙에 속하는데,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이며 해발은 1700-1900미터에 달한다. 주천의 남부산지는 고한 반건조기후에 속하는데 연 평균 기온이 4~6℃이고 회랑지대는 온대 건조기후에 속하며 연 평균 기온은 대략 5℃~9℃이다. 주천의 전체적인 기후특징은 강우량이 적고 증발량이 많은데, 감숙성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강우량이 가장 적은 지역 중 하나이며 동시에 감숙성에서 증발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일조시간이 길고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며 여름은 건조하고 덥지만 계절이 길지 않고, 겨울은 춥고 길며 봄이 되면 기온이 빠르게 오른다. 늘 건조하고 바람이 많아 안서지방은 "세계의 바람창고"라고 불리운다.

  하, 상, 주, 춘추전국시기부터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서족(西), 저족(氐), 월씨족(月氏), 오손족(乌孙), 흉노족(匈奴) 등 유목민족들이 이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서한시기 원수(元狩) 2년(기원전 121년), 재능과 모략이 뛰어난 한무제가 표기장군 곽거병에게 명하여 하서지역에 두번 군사를 파견한 결과 흉노족을 물리치고 하서회랑에 "사군과 이관"(주천, 무위, 장액, 돈황, 양관, 옥문관)을 설치하였고 장성을 쌓았으며 백성들을 이주시켜 토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시작하였다. 또한 실크로드를 개통하여 동서 교류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였다. 이후 이 신기한 오아시스의 대지에 휘황찬란한 문화, 예술, 관문요새, 장성 봉화대, 사막낙타 방울소리, 화공과 사당, 석굴라마, 비장한 전쟁, 전설, 호매한 시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아름다운 역사의 장면을 형성하고 풍부한 문화 재산을 쌓았다.

  주천지역은 산맥이 첩첩산중 이어져 있고 고비사막이 일망무제하며 분지가 잇닿아 있어 독특하고 웅장한 서북풍경을 이루고 있다. 은백색 빙천설경도 있고 푸른 물결과도 같은 평원 오아시스도 있으며 고비사막 내에 신기루도 볼 수 있다.

  주천 서한명지(AAAA

  주천 서한명지는 천호공원이라고도 부르며 주천시에서 동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토지 점유면적이 27만 평방킬로미터이다. 하서회랑에서 유일하게 보존이 완전한 한나라 시기 원림이다. 이미 2,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고전원림으로서 한나라 시기의 풍격과 강남지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명소 내의 주요 명승고적은 한고주천(汉古酒泉), 좌공류(左公柳), 천호(泉湖)와 대량의 원림 건축물인데 그중 한고주천이 바로 주천시 이름의 유래이며 이미 몇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주천문화의 핵심이다. 원내에는 청나라 시기 “서한주천승지(西汉酒泉胜迹)"와 “한주천고군(汉酒泉古郡)"이라고 쓰여진 비석과 좌종당(左宗棠)이 손수 쓴 액자 “대지제호(大地醍醐)"도 있으며 주천승지(酒泉胜迹), 월동금주(月洞金珠), 서한승지(西汉胜境), 기련징파(祁连澄波), 연운심처(烟云深处), 곡원찬수(曲苑餐秀), 화월쌍청(花月双清), 루반만주(芦伴晚舟) 등의 팔대명소가 있다. 고목이 하늘을 찌르고 정자와 누각이 화려하고 웅장하여 예로부터 “장성 외의 강남", “사막 속의 명주"라고 불리웠고 주천 유람길에서 반드시 들려봐야 할 곳이다.

  옥문 적금협명소(AAAA

  옥문 적금협명소는 경치가 수려하고 기후가 좋으며 여행자원이 풍부하다. 옥문시 신시구 북쪽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석유하 중단 적협협곡에 위치하고 있다.

  명소에는 웅대한 저수지댐과 수력발전소 및 적금단수기념비(赤金断水碑记), 적수관음 (滴水观音), 용구폭포(龙口瀑布), 백미터 수련(百米水帘)과 용왕각(龙王阁), 산신거(山神居), 조공사(赵公祠) 등 자연명소와 인문명소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북제일표류(西北第一漂)"라고 부르는 하도 래프팅, 요트놀이, 수영과 모래 찜질, 낚시, 고봉 케이블 등의 놀이 종목도 갖춰져 있다.

  2012년 명소에 “충관 적금협(冲关赤金峡)"이라고 부르는 대형 수상오락터를 건설하였다. 이는 서북에서 첫 번째의 대형 수상 관문돌파 오락장소로서 풍부한 수상경기 및 오락종목을 설치하여 많은 손님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주천 부강 몽천당명소(AAAA

   몽천당명소는 주천시 숙주구 부강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천국을 꿈꾸는 것과 같고, 사계가 봄같은 곳이다(酒泉梦天堂,大西北四季如春的地方)"라는 명성을 갖고 있으며 쇼핑관광, 기석관람, 태세신(太岁) 찾기, 영화제작, 문예공연, 서화교류와 여행상품판매 등을 할 수 있다.

   명소의 관광거리는 원림예술을 위주로 하였고 거리에 설치된 인공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큰 실내 인공산수로 이미 상해의 세계 기네스북 총부에서 "최고의 실내 인공산" 증서를 수여받았다. 동시에 상해 세계 기네스북 증서를 수여받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큰 기석과 가장 많은 기석을 진열한 실내거리가 있는데 오매나무를 깔았고 길이만도 1000여 미터에 이른다. 기석, 서법, 조각예술을  위주로 하고 진열한 기석의 수량이 1,200여 조각에 달한다.

  생태 관광명소에는 자미꽃을 위주로 하는 200여 종의 각종 화분이 진열되어 있어 꽃구경을 하는 유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민속공연을 위주로 하는 연예 공중화원과 과학기술보급 및 보물감상을 위주로 하는 네 개의 전시장은 유람객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는 동시에 명소의 취미성과 예술성, 오락성을 느끼게 해준다.

  중국 주천 위성발사센터

  중국 위성발사센터는 항천성이라고도 하며 약칭은 JSLA이다. 주천시 동북쪽에서 210킬로미터 떨어진 파단길림사막 속에 위치한다. 중국 과학위성, 기술실험 위성과 운반용 로켓의 발사실험 기지의 하나이며 중국에서 첫 번째로 창립되고 규모가 가장 큰 종합성 유도탄과 위성발사 중심으로 중국에서 현재 유일한 유인 항천발사장이다.

  국내 유람객들한테 개방된 관광지는 위성발사장, 지휘공제중심, 장정 2호 로켓, 테스트센터, 주천 위성발사센터 역사전시관, 혁명열사릉원, 동풍저수지, 사막 포플러수림 등이다.

  막고굴

  막고굴은 “천불동"이라고도 부르며 돈황시 동남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져있다. 산서성의 대동 운강석굴, 하남성의 낙양 용문석굴, 감숙성의 천수 맥적산석굴과 함께 중국 4대 석굴로 불리운다. 막고굴은 진나라 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는데 16국, 오대, 서하, 원나라 등의 시기를 거치며 거대한 규모를 형성하였고 석굴은 735개, 벽화 4.5만 평방미터, 진흙 채색 소상 2,415존을 갖추어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내용 또한 가장 풍부한 불교예술지이다.

  돈황 막고굴 중 500여 개의 석굴에 벽화와 채색 조각이 492개 보존되어 있는데, 석굴을 석굴 건축물과 기능에 따라 중심 주굴(지제굴)(中心柱窟(支提窟)), 전당굴(중앙불전굴)( 殿堂窟(中央佛坛窟)), 복두정형굴(覆斗顶型窟), 대상굴(大像窟), 열반굴(涅槃窟), 선굴(禅窟), 승방굴(僧房窟), 곳간굴(廪窟), 그림자굴(影窟)과 예굴(瘗窟) 등으로 나누고 있으며 일부 불탑도 포함되어 있다. 가장 큰 굴은 높이가 40여 미터이고 너비가 30미터이며 가장 작은 굴은 한 자 높이도 채 안된다. 보존된 초기 석굴 중에서 중심탑주식 석굴(中心塔柱式)은 외래형식인데 이는 고대 예술가들이 외래 예술형식을 접수한 동시에 소화, 흡수하여 중국 민족예술형식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반영하며 그중 대부분은 지금까지 보존된 고대 건축물 중의 걸작이다. 석굴 밖에는 비교적 완전한 당나라, 송나라 시기의 목질구조 처마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흔히 얻기 힘든 목질구조 고대건축물의 실물자료로서 높은 연구가치를 갖고 있다.

  막고굴 벽화는 색채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대량의 벽화 속에 불경 이야기, 산천경물, 정자누각 등의 내용이 표현되어 있다. 고대 예술가들은 민족적 토대 위에 이란, 인도, 희랍 등 외국의 고대 예술의 장점들을 흡수하였는데 이는 중화 민족의 발달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각 시대별로 벽화 속에 나타난 회화풍격은 중국 봉건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상황을 반영하고 중국 고대미술사의 찬란한 상징으로 중국 고대사연구에 진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돈황 명사산ㆍ월아천 명소(AAAA

  명사산, 월아천 명소는 돈황시 성남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예로부터 “산과 샘, 모래와 물이 함께 존재한다(山泉共处,沙水共生)"는 기묘한 경관으로 유명하였으며 “장성 이북 경관의 일절(塞外风光之一绝) "이라고 불리웠다. 명사산, 월아천과 막고굴 예술경관은 돈황 성남에 서로 잇닿은 “이절(二绝)"을 형성하였는데 이곳은 중국은 물론 세계인들이 갈망하는 여행 명승지이다.

  예전에 명사산을 사각산(沙角山) 또는 신사산(神沙山)이라고 불렀다. 모래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사구에서 흘러내릴 때 울음 소리를 낸다 하여 “명사산"이라고도 부르며 그 모래가 홍, 황, 녹, 흑, 백 다섯 가지 색깔이어서 “오색사"라고도 한다. 월아천은 명사산 속에 둘러싸여 있고 그 모양이 초생달 같아 얻은 이름이다. 수 천년 동안 모래산이 샘을 둘러싸고 있으며 샘에 모래산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 마치 반질반질하고 빛나는 비취가 모래산 깊은 계곡에 박혀 있는 듯 하여 “바람이 모래를 끼고 날면서 울며 깨끗한 샘 속에 달 그림자가 비친다(风夹沙而飞响,泉映月而无尘)"라고 하였다. 모래와 샘물 사이의 거리는 단지 수십 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큰 바람이 불어도 모래에 묻히지 않고 흐려지지도 마르지도 않는다. “모래와 물, 산과 샘이 함께 존재한다(沙水共生,山泉共存)"는 지형적 특징은 확실히 절경이여서 사람들은 시로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맑고 푸른 하늘아래 너무나도 아름다운 월아천, 사면에 은산이 둘러싸이고 맑은 물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난다(晴空万里蔚蓝天,美绝人寰月牙泉。银山四面山环抱,一池清水绿漪涟)".

  돈황 양관 문물여행명소(AAAA

  양관 문물여행 명소는 돈황시구 서남쪽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고 한나라, 당나라 시기 역사유적, 사막 자연풍경, 생태 농업관광과 양관 박물관 등의 경관으로 구성되어 있어 문화가치, 여행관광, 휴가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명소에는 명승고적이 많고 돈황의 문물분포가 가장 많이 집중된 곳 중의 하나이며 주로 2,000여 년전의 역사 문물유적, 사막 오아시스 자연경관과 현대 인문경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돈돈산(墩墩山)의 한나라 시기 봉화대는 명소의 하이라이트로 “양관의 눈과 귀(阳关耳目)"라고 불리우며 양관의 살아있는 역사증거이다. 양관 박물관은 명소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봉화대 유적에서 남쪽으로 800미터 떨어져 있다. 또한 골동품 모래장이 있는데 양관유적이 이 모래장에 있다. 동쪽에는 당나라 시기 수창성(寿昌城)과 천마가 생산되는 한나라 시기 악와늪(渥洼池) 옛터이고 서남쪽으로 이동하면 실크로드 남도가 첩첩산중의 산맥사이에서 멀리까지 구불구불 뻗어나간다. 부근의 사막 삼림공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고목이 하늘을 찌르며 샘물이 졸졸 흐른다. 멀리 바라보면 아이금산(옛명은 금안산)의 하얀 눈과 일망무제한 고비사막이 장엄하고 방대한 풍경을 이룬다. 또한 한나라, 진나라 시기 묘군이 도처에 분포되어 있고 아름다운 사막 오아시스의 자연풍경과 서로 어울려 명소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돈황 아단 지질공원(AAAA

  돈황 아단 국가 지질공원은 돈황시 서북부에서 180킬로미터 떨어져있고 면적이 398평방킬로미터로 현재 아시아에서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지질 형태발육 등이 완전하고 관상가치가 높은 아단(雅丹)형태의 지질군이다. 《영웅》, 《천맥전설》, 《제천대성 손오공》 등의 영화작품이 모두 이 곳에서 촬영되였다.

  아단 지질공원은 주로 풍화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아단 지모경관이고 고대 라포박(罗布泊)의 일부분에 속한다. 공원 내에는 풍화지모가 집중 되어 있고 각기 다른 모습의 형태로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몽고포", "낙타",  "석조", "석인", "석불", "석말" 등 모양과 모습이 제각각인 실감적인 형상물들이다. 마치 중세 시대의 고성과도 같이 세계의 많은 유명한 건축물의 축소형을 찾아볼 수 있고 땅거미가 진 후의 날카로운 바람소리는 수 만 마리의 야수들이 함께 울부짖는 것 같이 소름이 끼친다 하여 "아단 마귀성"이라고도 불린다.

  돈황 아단 지질공원은 그 독특한 사막풍경, 각기 다른 형태의 지질기관과 유구한 민간전설로 수 많은 유람객과 탐험자들을 매료시키며 대자연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재미를 준다. 

  돈황고성(AAA

  돈황고성은 "돈황 영화성", "송나라 사주 고성"이라고도 불린다. 돈황시 양관중로 남쪽 고비사막에 위치하고 시중심과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1987년 중ㆍ일 합작 대형 사극 《돈황》을 촬영할 때 송나라 시기의 《청명상하도(清明上河图)》와 중국 고대 건축물을 참고하여 디자인하고 건설한 것으로 건축면적이 1.27만 평방킬로미터이다.

  돈황고성 건축은 짙은 서역풍격을 나타내며 동, 서, 남 세 방위에 문이 있고 성루가 높고 성내에 고창(高昌), 돈황(敦煌), 감주(甘州), 흥경(兴庆)과 변량(汴梁) 다섯개의 주요도로가 있으며 거리 옆에는 사원, 전당포, 술집, 객점, 주택 등이 있다. 고성은 북송시기 중원과 돈황, 돈황과 서역 각 민족사이의 우호적인 교류와 짙은 지방특색을 재현하였고 중국 서부 건축예술의 박물관으로 불리운다. 고성에서는 《봉신연의(封神演义)》, 《노검소광사(怒剑啸狂沙)》, 《신룡문객점(新龙门客栈)》, 《돈황야담(敦煌夜谈)》, 《사주왕자(沙州王子)》, 《신기루(海市蜃楼)》 등 이십 편에 이르는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였고 이미 돈황의 주요 여행 관광지가 되였다.

  금탑 원앙호명소(AAA

  원앙호명소는 금탑현 서남쪽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산사이의 협곡에 위치하였고 산을 의지하고 물 가까이에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건축규모가 크고 웅대하며 기세가 웅장하며, 자연조건이 우월하여 "사막의 보배", "장성밖의 명주"라는 명성을 갖고있다.

  주천 상록원(AAA

  상록원은 감숙성 주천시 신성구 숙주로에 위치하고 토지 점유면적이 2000무 (1무=666.66평방미터)이다. 주천에서 유일하게 농업 생산화 건설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완벽한 현대화 시설의 농업 관광 여행명소이다.

  주천 상록원은 주천시 상록 화목회사에서 1975년에 6500만원을 투자하여 건설하였고 원내에 집중된 국내외의 진귀한 꽃과 식물의 품종이 800여 종이며 감숙성 하서지역에서 가장 큰 꽃묘목 번식재배기지이다. 하서지역에서 가장 큰 실내외 사계절 감상 열대식물원과 화분경관원이 설립되어 있다. 이 밖에 화초 전시실과 접대실, 서화 예술관 및 독특한 설계의 포도회랑, 녹화통로 등 서비스 시설도 갖추고 있다.

  아커싸이 카자흐 민속원(AAA

  민속원은 아커싸이 카자흐 자치현의 중심지대에 위치하고 북쪽은 단결서로에, 동쪽은 화평로에, 서쪽은 문화로에, 남쪽은 건설서로에 접해있다. 토지 점유면적은 4.8만 평방미터이고 산수원림, 말경주, 휴가, 오락, 요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족 특색이 짙은 민속 문화오락원이다.

  민속원은 환경이 우아하고 도처에 나무가 푸르고 꽃이 피어있으며 목축 문화의 특징이 도드라진 건축풍격을 만나볼 수 있다. 례하면 파오식 건축물은 민속원 주변의 이슬람교 사원과 어울려 농후한 민족적 풍경을 연출해 낸다. 원내에는 타원형 경마장, 카자흐 민속박물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카자흐 파오 한 채와 소형 파오가 세 채 있다.

  민속원의 주요 활동종목으로 민족 가무공연, 승마운동, 목민 풍속여행활동 등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카자흐 전통무용, 민족노래, 민간 전통악기연주, 질주하는 말에서 양 잡기, 처녀 쫓기, 말 위에서 줄당기기, 카자흐 목민생활체험, 민족 특색음식 맛보기(례하면 말창자, 말린 양고기, 손으로 먹는 양고기, 우유 두부, 우유 수제비, 버터기름, 우유차, 마유주 등) 등이다. 민속 박물관에는 주로 아커싸이현의 진귀한 야생 동식물의 표본, 광물자원 샘플, 진귀한 약초샘플, 민족 역사문물, 민족복장, 민족 일상용품, 생산도구, 민간 공예미술품 등을 진열하였다.

  돈황 삼위산(AAA

  돈황 삼위산은 돈황시 동남쪽에 있다. 막고굴에서 약 6킬로미터 이동하여 삼위산 아래에 도착한 후 350미터 되는 가파로운 산간 오솔길을 지나 3킬로미터쯤 가면 “삼위 성경(三危圣境)"에 도착한다.

  삼위산은 돈황 제일 성경이다. 지역에서는 삼위산을 돈황 팔경의 첫 손에 꼽으며 “위봉동흘(危峰东屹)"이라 부른다. 삼위산은 동서로 수십리 뻗어있고 주봉은 천하를 끼고 명사산과 마주 하고 있는데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당장 무너질 듯 위험하여 삼위라 한다(三峰耸立、如危欲堕,故云三危)". 동서방향 6킬로미터쯤의 명소에는 산문패방(山门牌坊), 왕모궁(王母宫), 관음정(观音井), 아미타불전(阿弥陀佛殿), 관음전(观音殿), 용왕묘(龙王庙), 평안묘(平安庙), 석가모니 대불(释迹牟尼大佛), 노군묘(老君庙) 등 사원 건축물이 있으며 먼 산에는 낙당(乐堂)과 각종 기념비, 조각들이 있다.

  과주 교만성 여행명소(AAA

  과주 교만성 여행명소는 안서현 동쪽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새 공로 옆에 있고 동서 길이가 320미터, 남북 너비가 122미터, 유적 높이가 5-8미터이고 네 각에 각돈(角墩)이 있고 성 내에 주택 등 건축 유적들이 남아있다. 소륵하(疏勒河)위에 천생교(天生桥)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사람과 말의 왕래가 끊이질 않았고 강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휘여져 교만이라 불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강희(康熙) 황제가 꿈 속에서 오아시스가 이어져 있고 강물이 맑은 선경에 도달했는데 그 곳에서 하늘을 찌르듯 우뚝 솟은 두 그루의 고목에 눈부신 황관, 옥대 등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강희 황제가 꿈 속의 기억을 따라 교만을 찾아냈고 장인들을 소집하여 대규모의 공사를 명했는데 공사재료를 책임진 대신은 탐관오리로 공사비용을 착복하였다. 이를 알게 된 강희 황제가 대노하여 탐관의 목을 자르고 경고하는 의미로 사람가죽으로 북을 만들었다. 이를 영녕사(永宁寺)에 걸어 놓았는데 두드리면 사람 가죽 소리가 나고 소리가 무겁다. 교만성에는 또한 박물관이 있는데 내부에는 각종 고비사막의 야생 동식물표본, 미라와 문물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물인 상아불의 복제품과 1:1로 모사한 유림석굴의 벽화가 있다.

  옥문 "철인" 왕진희 기념관명소(AAA

  옥문시 철인 왕진희 기념관은 연곽 고속도로 휴게소에 위치하고 토지 점유면적이 22,000평방미터이고 총 건축면적이 7,020평방미터, 주요 건축물 면적이 1,230평방미터로 외관은 이층구조의 모조 건축물이다.

  기념관의 전시실은 다섯 부분(고난의 경력, 옥문에서의 창업, 대경에서의 결전, 고향에 대한 마음, 불멸의 정신)으로 나누어 260여 장의 진귀한 역사사진과 그림 및 100여 건의 실물을 전시하였는데 주로 일상 생활용품, 생산공구, 학습도구, 상품 등이다. 이 중 종려나무 상자가 가장 진귀한데 이는 철인 왕진희의 생전 유품이며 기념관의 소장품 중 가장 진귀하다. 철인 동시기의 물품과 상품들도 중요한데 이는 기념관의 주요 소장품들이다. 기념관은 실물 진열, 그림 진열, 전자동영상 설비, 현장복구, 소상, 모래모형 등 여러가지 형식으로 철인 왕진희가 옥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37년의 인생 및 대경에서 근무한 마지막 10년을 표현하였고 왕진희의 짧지만 평범하지 않은 47년 인생경력과 옥문의 찬란한 발전을 소개하고 왕진희의 애국, 창업, 봉사의 일생과 옥문인민들의 근로하고 용감한 정신, 간고한 창업정신과 사심없는 분투정신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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